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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주인공 금성대군 가계도, 수양대군과 갈라진 운명

by 홈매직 2026.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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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가계도

금성대군 가계도 완벽 정리 – 세종의 아들에서 단종 복위 충신까지
조선 역사 인물

금성대군 가계도 완벽 정리
세종의 아들에서 단종 복위 충신까지

금성대군 가계도는 세종의 아들들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 다툼의 가장 극적인 단면입니다.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의 친동생이라는 복잡한 위치 속에서, 그는 정통성과 충절을 선택했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금성대군 가계도를 중심으로 조선 왕실 권력 이동의 전 과정을 정리합니다.

1. 금성대군 가계도의 출발점 – 세종과 소헌왕후

금성대군 가계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조선 4대 왕 세종(世宗)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세종은 왕비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여러 왕자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금성대군 이유(李瑜)는 세종의 7남이자 소헌왕후 소생의 적 6남으로 기록됩니다.

1426년(세종 8년)에 태어난 금성대군은 1433년 정식으로 금성대군에 봉해졌으며, 태조의 아들 의안대군 방석의 후사를 잇는 봉사손·출계 역할도 부여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대군의 지위를 넘어, 조선 왕실 내에서 상징적 무게를 지니는 존재였음을 의미합니다.

즉 금성대군 가계도는 "세종의 친아들"이면서 동시에 "태조 계열 후사를 잇는 인물"이라는 이중적 혈통 위치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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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가계도

2. 세종 – 문종 – 단종 – 세조, 가계도로 읽는 왕권 이동

금성대군 가계도를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세종 사후 왕위 계승의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세종의 맏아들 문종은 5대 왕에 즉위했으나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문종의 어린 아들 단종이 6대 왕으로 왕위를 이었습니다. 단종은 즉위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 실질적 통치가 어려웠고, 이 공백을 세종의 또 다른 아들 수양대군이 파고들었습니다.

이 계보 안에서 금성대군의 위치는 복잡합니다. 그는 문종·수양대군·안평대군의 친동생이며, 동시에 단종에게는 친삼촌, 즉 숙부였습니다. 금성대군 가계도는 "세종 – 문종 – 단종" 정통 계승 라인과 "세종 – 수양대군(세조)" 찬탈 권력 라인 사이의 가장 민감한 접점에 자리합니다.

금성대군 가계도 핵심 관계: 세종의 아들 = 문종·수양대군·안평대군의 친동생 = 단종의 숙부(친삼촌). 같은 혈통에서 출발했지만 정치적 선택은 극단으로 갈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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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단종

3. 계유정난 – 형제의 갈라진 선택

1453년(단종 1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단종을 보좌하던 영의정 김종서, 황보인 등 핵심 대신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이어 1455년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했고, 수양대군은 7대 왕 세조로 즉위합니다.

이 과정에서 금성대군 가계도 내부에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생겼습니다. 금성대군은 형 수양대군의 권력 장악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문종 – 단종 라인의 정통성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세조 즉위 후 금성대군은 유배 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그의 비극은 여기서 본격화됩니다.

금성대군 가계도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같은 아버지 세종을 두고, 같은 혈통에서 태어난 형제가 권력과 충절이라는 정반대의 길로 갈라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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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초상화

4. 단종 복위 운동과 금성대군 – 순흥 정축지변의 전말

단종 복위를 위한 시도는 두 차례 이루어졌습니다. 1456년에는 성삼문·박팽년·하위지 등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한 사육신 복위 운동이 발각되어 관련자들이 처형되었습니다.

두 번째 시도가 바로 금성대군 가계도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인 1457년 순흥 복위 의거입니다. 유배지 순흥에 머물던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 등과 함께 의병을 모으고, 경상도 일대 사족들에게 격문을 보내 단종 복위를 도모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전에 밀고되어 실패했고, 이 사건을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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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생애 연표

세조는 순흥 일대를 철저히 진압했고, 금성대군은 결국 1457년 형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아 32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습니다. "세종의 아들 → 단종의 숙부 → 세조의 동생 → 단종 복위 운동의 중심 → 역모죄로 사사" 라는 흐름이 금성대군 가계도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의 서사입니다.

5. 금성대군 가계도 핵심 인물 관계 한눈에 보기

인물 가계도 위치 금성대군과의 관계 핵심 사건·역할
세종 조선 4대 왕 아버지 금성대군 포함 다수 왕자의 부
소헌왕후 심씨 세종의 왕비 어머니 세종 왕자들의 모친
문종 세종의 맏아들, 5대 왕 친형 단종의 아버지, 정통 계승자
수양대군(세조) 세종의 아들, 7대 왕 친형 계유정난 주도, 단종 폐위·찬탈
단종 문종의 아들, 6대 왕 조카(숙부–조카) 폐위·상왕, 이후 사사
안평대군 세종의 아들 형제 계유정난으로 먼저 제거된 대군
금성대군 이유 세종의 7남·적 6남 본인 단종 복위 운동 주도, 순흥 사사
이보흠 순흥부사 복위 운동 동지 순흥 단종 복위 의거 핵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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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역의 이정재

6. 역모인가 충절인가 – 금성대군 가계도가 지금도 재조명되는 이유

최근 드라마·유튜브 역사 채널·한국사능력검정시험 수험서에서 단종–세조–사육신–금성대군 라인은 빠지지 않는 핵심 테마입니다. 금성대군은 "성품이 강직하고, 죽음을 각오한 충성심을 지닌 인물"로 반복적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순흥 복위 의거는 "역모인가, 충절인가"라는 물음을 지금도 불러일으킵니다.

금성대군 가계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단순한 혈통 파악이 아닙니다. 세종 – 문종 – 단종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의 흐름과, 수양대군(세조)가 구현한 실력 기반 권력, 그 사이에서 충절을 택한 금성대군의 선택이 지금도 "어떤 삶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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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초상화

세종의 아들들은 같은 가계도 안에서 각각 왕권 찬탈(세조), 충절의 사사(금성대군), 정치적 희생(안평대군)이라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금성대군 가계도는 바로 이 세 갈래 운명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금성대군 가계도는 조선 전기 왕권 다툼의 축약판입니다. 정통성 대 권력, 충절 대 생존이라는 조선 왕권 다툼의 본질을 읽어내는 핵심 자료로, 앞으로도 꾸준히 재조명될 역사적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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